잘 내려오는 일
산은 오르는 것보다, 잘 내려오는 게 중요하단 걸 십여 년 전 지리산 백무동 계곡에서 배웠다. 힘 빠져 풀린 다리는 울퉁불퉁하던 돌길에서 자주 휘청거렸다. 돌보지 않았던 무릎 관절에 통증이 몰려 절뚝거렸다. 끝내 악 소리 내고 쓰러진 길이 평탄한 흙길이었으니 나는 복권 당첨의 기운을 미리 당겨썼다. 조심 또 조심 늙은 엄마 잔소리를 무르팍 흉터로 몸에 새겼다. 공사장 고소 작업대에서 일하다 떨어져 뼈가 조각 난 아빠 병상을 하루 지키면서는 조심 좀 하시지 잔소리를 차마 할 수 없었다. 그저 마음 깊숙이 새길 일이었다. 봄이라고, 대청소 나선 마을 사람이 사다리 길게 빼 거기 올라 작업하는 걸 보고는 화들짝 놀라 달려가 사다리를 잡았다. 별일도 아닌데 호들갑 떠는 모양새가 됐는데, 마음은 편했다. 높은 데 올라 일하는 사람들이 거길 잘 내려와 집에 가는 일상이야말로 실은 참 별일도 아닌 것인데, 여태 호들갑을 떨고 큰 소리를 내야만 하는 일이다. 사람이, 시간이 없다고, 위험 등에 지고 홀로 높은 곳 오르는 이들이 오늘 많다. 실은 돈 얼마가 문제였다고, 떨어져 죽고 다친 사람 앞에서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니, 오늘도 일하는 사람 목숨 값은 쉬쉬 비밀에 부쳐진다. 금요일 퇴근 시간 지하철 출입구 시설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사다리 두 개가 산처럼 솟았다. 반대편 출구로 밀려 나온 사람들이 별일도 없이 집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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