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어쩌다 새 신발을 갖게 되면, 한동안 뒤뚱거리며 다녔다. 구겨지는 게 안타까워서다. 언젠가는 혼자 시장에 갔다가 으슥한 골목길에서 빨간 벽돌 들고 위협하던 불량배들에게 신발을 뺏기고 말았다. 맨발로 돌아오는 길의 감촉이 지금껏 생생하다. 엄마 품에 안겨서야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한겨울 신문배달 알바를 했다. 자전거 끌고 새벽길을 달려 한 달 15만원을 벌었다. 신발가게로 달려가 당시 유행하던 충격 흡수 잘 되는 운동화를 샀다. 얼마 되지도 않아 쩍쩍 갈라지던 신발을 보며 슬펐다. 소위 짝퉁이었다. 학교 식당에서 설거지 알바를 해서 번 돈으로는 정품이 확실한 하얀색 운동화를 사 신었다. 신입생 후배 맞이하러 가던 길에 탄 버스가 미시령 옛 고개를 미처 넘지 못했다. 나는 죽을 고비를 겨우 넘었다. 황급히 달려온 엄마 붙들고 그 신발 잘 챙기라고 했다. 반쯤 검붉은 신발을 당시에 보지 못했다. 오랜 병원 생활 끝내고 돌아간 집에서 새것보다도 더 하얀 신발을 볼 수 있었다. 박박 오래 문질러 겨우 닦았다고 엄마가 말했다. 사월, 안산을 걷다 들른 전시회장에 십 년 전 물에서 건진 유류품들이 보였다. 세월 흘러 이제는 마른 줄로만 알았던 눈물이 신발 앞에서 터지고 말았다. 기억이 기어이 눈물을 불렀다. 막힌 길 너머 새 길을 내느라 뚜벅뚜벅, 신발 밑창이 닳도록 아픈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
정기훈 기자 |